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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아버지는
3년 전에 명절날... 마지막 인사도 하지 못하고
제 곁을 떠나셨답니다
15년 전에 어머님을 먼저 하늘로 보내신 후에
혼자서 생활하셨는데..
명절을 앞두고 전화를 드렸었는데.. 연락이 안 되는 거였습니다
평소에 사우나를 매일같이 다니셨기에
명절을 앞두고 사우나 가셨나 보다.. 하고
대수롭지 않게 넘어갔었는데..
다음날 아침에도 연락이 안 되자..
불길한 마음에 득달같이 아버님 집을 찾았는데
침대 위에서 조용히 눈을 감으셨답니다..
그렇게 저는 고아가 됐답니다
이제 제게 남은 부모님은 장인. 장모님뿐이랍니다
장모님은 대략 12~13년 전에 백 년 만에 폭설이 내린 날
당뇨환자 셔서 투석을 받으러 나서시다가 집 앞 계단에서 눈을 밟고 미끄러지시며
발목이 반대로 꺾이는 대형사고를 당하셨고..
(당시에 발목뼈가 완전히 노출이 됐을 정도로 큰 사고)
평소 당뇨환자셨던 탓에 몇 번의 수술을 했지만
지금 어머님의 상태는 발목이 힘없이 흔들흔들? 거리는 상태랍니다
장애 1급을 판정받으셨고 다시는 본인의 힘으로는
서있을 수도.. 걸을 수도.. 없는 상태가 됐답니다
일주일에 두 번을 투석을 받으셔야 했는데
아버님께서는 어머님이 투석 가는 날은 모든 일을 제쳐두고
어머님의 투석에 모든 정성을 다하셨습니다
새벽 5시에 일어나셔서 휠체어에 탄 어머님을
집에서 10분 거리 병원으로 모셔드리고
약 5~6시간 후에 끝났다고 전화 오면 가서
모셔오시는 생활을 10여 년을 하고 계셨습니다
며칠 전 그날도 어머님께서 투석을 가시는 날이었는데..
06시에 저에게 전화 가옵니다
그 시간에 저에게 전화가 온 적이 단 한 번도 없었던지라..
나쁜 생각이 먼저 들었지만..
심호흡을 하고 전화를 받았고..
ㅡ아버지가 일어나지를 못하신다..
바로 처갓집으로 달렸습니다
집 앞의 보라매 병원 응급실로 향했고
하루의 시간을 검사.. 치료.. 검사.. 치료..
저녁 즈음되니 어느 정도 걸으실 수가 있으셨습니다
아버님께 혹시라도 또 무슨 일이 있으시면
그때도 바로 연락 주세요.. 하고 댁까지 모셔다 드렸고..
그렇게 괜찮아지신 줄로만 알았습니다
3일이라는 시간이 흐르고..
회사에서 총회가 있어서 낮부터 고깃집에서
고기를 굽고 잇었는데..
어머님께서 전화가 왔습니다
ㅡ아버님께서 이번에는 아예 거동을 못하신다
지금 119타고 분당 서울대병원으로 가는 중이다
들고 있던 집게와 가위를 던져버리고
부랴부랴 분당 서울대 병원으로 향했습니다
제가 먼저 도착했더라고요..
잠시 후 사설 구급차로 도착하신 아버님을 보니..
눈물부터 나왔습니다..
그 시간이 오후 2시 즈음..
환자가 너무 많아서 정신이 없으신
의사 선생님과 간호사분들에게는 죄송했지만
제 입장에서는 아버님이 우선이었기에..
언제 검사받을 수 있냐.. 언제 치료받을 수 있냐..
언제까지 기다려야 하냐..
한참의 진료 끝에 1차로 나온 진단은
ㅡ나트륨 저하증?
암튼 몸속의 나트륨 수치가 너무 낮아서 그런 거라는
의견을 받았습니다
근데 의사 선생님이 말씀하시길..
ㅡ나트륨 수치는 빠른 시간에 올릴 수는 없다
아주 천천히 올려야 한다 안 그러면 뇌에 이상이 생긴다...
입원 판정을 받으셨고
밤 11시가 넘어서야 응급실 2층에 있는 병실로
입원을 하실 수가 있었습니다
하지만
보호자는 단 1명만 입장을 할 수 있었고
바꿀 수도 없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제가 하기로 했고 그때부터 5일간의 간병생활이 시작됐습니다
첫날은 모든 게 서툴러서 소변 봉투에서
소변을 빼는 방법도 몰라서 소변 봉투를 보시던
옆 침대 간병인분께서 친절히 가르쳐주셨고
저에게 간병에 필요한 많은 정보를 주셨습니다
첫날은 밤새도록 1시간 간격으로 의사 선생님. 간호사님께서
치료차 오셔서 거의 뜬눈으로 밤을 새웠고..
이틀째가 되니 어느 정도 병실에서 제가 해야 할 일들을 대충이긴.. 했지만 파악할 수가 있었습니다
아침 7시 아침이 옵니다
그럼 아버님을 일으켜서 식사할 준비를 하고
하나하나 뚜껑을 벗기고 물고기 반찬 같은 경우는 일
일히 가시를 제거해서 밥 위에 올려드리고..
젓가락질을 전혀 하지 못하셔서 포크를 구해 와서
포크로 식사 하실수 있게 했고..
거의 모든 식사를 절반 정도 드시고는 못 드신다고 하시네요..
식사가 끝나면 식판을 가져다 놓고
물을 떠서 약을 챙겨드리고 이제 화장실로 가서
머리도 감겨드리고 세수도 시켜드리고.. 하다 보면
그렇게 오전 시간이 지나가더라고요..
곧 점심시간이 되고..
검사를 받기 위해 다른 곳으로 왔다 갔다 하다 보면
오후 시간이 지나가고..
저녁시간이 되고.. 저녁을 드시고 나면 온몸을
주물러 드렸습니다
밤 10시 정도가 되면.. 잠자리 챙겨드리고..
이 생활이 5일 정도가 되니 적응도 되고
여유도 생기더라고요
아버님도 많이는 아니었지만 조금은 괜찮아지신 거 같고..
처음에는 일어나시지도 못하셨던 분이
어느 정도 본인의 힘으로 일어서는 거까지는
성공을 하셨습니다
의사 선생님께서는 나트륨 수치가 어느 정도 잡히기는 했는데..
지금쯤이면 몸이 어느정도 정상은 아니더라도 거동은 할 수 있어야 하는데.. 라며 말끝을 흐리셨고..
신경계 쪽으로 다시 진료를 보라는 말을 하시면서
퇴원을 얘기하셨습니다
아시겠지만 진료를 보고 싶다고 접수하면 그날 바로 되는 게 아니었기에..
가장 빠른 날로 접수를 하고 퇴원을 하기로 했습니다
짧은 시간이었지만..
정들었던 같은 병실 보호자분들과 인사를 나누는데..
이런저런 짧은 대화 끝에
아버님께서 제가 사위라는는 얘기를 하시자
모든 분들이 놀라시며...
ㅡ당연히 아들인 줄 알았어요..
그래서 이렇게 답해드렸습니다
ㅡ사위도 자식이랍니다
지금은 퇴원을 하셔서 제집에서 잠시 머물고 계십니다
감사하게도 눈에 띄게 경과가 좋아지고 계신답니다..
주변에 비슷한 증상을 가지셨던 분들이 얘기해주시길..
물을 줄이고 보양식으로 식사를 하고..
시간이 어느 정도 지나면 괜찮아지실 거라고 해주셨고..
지금은 혼자의 힘으로 안마의자와 화장실까지
보조 기을 이용 하여 이동을 하실 수가 있으시답니다
제 생각이지만 시간이 지나면
예전의 건강하시던 시절까지는 아니더라도
일상생활에 지장이 없을 정도는 완치가 되실 거 같습니다..
부디
오랜 시간 제 곁에서 계셔주세요..
제가 마지막으로 아버지라고 부를 수 있는
존재십니다...
※출처 : bobaedream
https://www.etoland.co.kr/bbs/board.php?bo_table=etohumor05&wr_id=2762315&sca=%B0%A8%B5%BF
아고 ㅠㅠ 눈물 나네요
저는 챙겨 드릴 아버님이 안 계십니다
와이프가 그러기를 초등학교 때 돌아가셨다 하더라고요 ㅠㅠ
저도 아버님이 계셨다면 저 사위분처럼
할 수 있었을까요? ㅠㅠ
많은 생각이 듭니다...
정말 멋진 사위분 이시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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